저에겐 세상 누구보다 특별한 아들이 있습니다. 건강한 체격, 잘생긴 이목구비, 멋진 아들이죠. 사람들은 저에게 “아들 잘 생겼네.. 아들 잘 낳았네.” 라고 말합니다. 이 아이가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를 쓰면서 빛의 속도로 뛰어다니는 걸 보기 전에는요.
저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아홉 살이 되도록 말을 하지 못해, 엄마에게 “엄마”라고 부르지도 못하고요. 높은 곳에 올라가도 위험한 줄 모르고 행복해하는 특별한 아이입니다. 이런 특별한 아이와 함께한 9년이라는 시간과 함께 저도 특별한 엄마가 되었네요.
아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어릴 적부터 다니던 작은 영아전담어린이집을 퇴소하고 새로운 어린이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퇴소한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힘들다는 말을 늘 들어왔던 터라, 새로운 어린이집에 가게 되는 것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어린이집 생활은 시작되었죠.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어린이집에 간 첫 날, “어머님 안 되겠어요. 윤건이가 너무 힘드네요. 일찍 귀가 해주세요.” 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혹시나 잘 지내줄까? 하는 엄마의 설렘과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죠. 속상한 마음도 잠시, 일도 마치지 못한 채 저는 아이를 제 직장으로 데리고 와 일을 했습니다. 그래도 쫓겨나지 않고 다닐 수 있는 어린이집이 있음에 감사하며 말이죠.
그렇게 어린이집 생활을 시작한 지 일주일.
이번에는 어린이집 원장님께서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님! 윤건이에 대해 상담을 하셔야겠어요.” 무슨 일일까? 더 이상 우리 윤건이를 볼 수 없다고, 어린이집에서 퇴소하라고 하려고 하는 걸까? 아니면 더 일찍 집에 데려가라고 하는 걸까? 머릿속에 온갖 상상을 하며 퇴근 후 상담을 하러 갔습니다.
긴장된 마음을 안고, 들은 원장님의 첫마디. “어머님, 집에서 아이랑 놀아주나요? 일을 그만두고 아이랑 놀아주셔야죠.” 라고 조심스럽게 말하시네요.
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죄송합니다. 제가 노력해야죠.” 라고 수도 없이 반복하며 말을 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잘 놀아주지 못하는 엄마로 생각하시는 원장님께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겠더라고요. 또 이유 불문하고 죄송하다는 사과를 하지 않으면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쫓겨 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죠. 저는 그렇게 다른 부모들은 느끼지 않아도 될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하는 특별한 엄마가 된 거죠. 사회의 시선은 늘 그렇더라고요.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는 엄마가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엄마가 아이와 잘 놀아주지 않아서 발달이 느린 거라고요.
우리 윤건이는 세 살 때부터 아홉 살인 지금까지 세 살에 멈춰있습니다. 세 살짜리 아이 키우듯 9년이라는 시간을 한결 같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노력이 무색할 만큼 내 아들은 시간이 지나도 늘 한결 같이 세 살짜리 큰 아들로 멈춰있네요.
이런 장애 부모의 마음을 사람들은 알기나 할까요?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살아왔지만 죄인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처럼이나 시간은 더디게만 흐르고,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오지 않는 것에 안심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OO어린이집’ 이라는 저장된 이름과 함께 벨소리가 울립니다.
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 전화였죠. 선생님께서 “어머님 내일 견학이 있는데, 윤건이는 견학에 데려가지 못할 것 같아요. 양해 부탁드려요.” 라고 말합니다. 아이를 전담해서 봐줄 사람이 없어서죠. 언제 어디로 사라질지 모르는 이 아이를 데려갈 수 없다는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그 이후로도 견학이 있는 날이면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견학 날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는 아이는 식당을 하시는 친정 부모님께 맡겨야 했죠. 식당이 바쁜 날이면 아이는 식당 한 켠 방에서 만화영화를 보며 하루를 보냈다고 합니다. 아이에게 정말 미안했지만, 그래도 돌봐주실 부모님이 계신 것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렇게 어김없이 또 돌아오는 견학 날!
아이를 맡기고 출근길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휴대전화에 저장되지 않은 번호가 계속해서 전화가 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받은 전화기 너머로 “여보세요. 아이가 찻길을 맨발로 뛰어다니네요. 아이의 목에 걸려있는 미아방지 목걸이에 전화번호가 있어서 전화했어요! 너무 위험한데 아이가 가만히 있지 않네요. 빨리 와주세요”라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저는 심장이 두근두근 터질 것 같고, 흥분된 마음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발을 동동 구르다 바닥에 주저앉아 울부짖으며 엄마께 전화를 했습니다. “윤건이 어디 갔냐고!!” 라고 소리쳐 묻자, 왜 우냐며... 윤건이는 방에 있다고 합니다. 아직 윤건이가 없어진 것도 모르고 계신 거죠. 엄마가 방에 가보니, 윤건이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바쁜 틈을 타 창문을 열고 맨발로 뛰어나간 겁니다. “윤건이 빨리 찾아와!! 찾아오라고!!”라고 엄마께 소리를 질렸습니다. 어디 다치지는 않았나, 사고는 나지 않았을까? 찾으러 가기 전까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도망가는 건 아닌가, 또 잃어버리면 어떡하지? 숨이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제발...제발...’ 이라고 수도 없이 기도했습니다. 1분이 한 시간 같았습니다. 그때 전화가 왔습니다. 다행히 윤건이는 무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드는 악몽 같은 상상들이 저를 정말 미치게 만드는 듯 했습니다. 윤건이를 또 잃어버리거나 못 찾으면 나는 죽을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하며 말입니다.
‘장애아이의 부모’라는 삶이 힘들 때면 이렇게 살아 뭐하나, 윤건이랑 같이 사라질까? 이런 생각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어느 순간 윤건이 보다 하루를 더 살고 싶다는 소원이 생겼고, 그런 생각이 이 짧은 순간도 저에게 악몽을 상상을 하게 했나봅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해답을 줬으면 좋겠습니다.
‘김주리! 너는 윤건이, 윤아보다 더 오래살수 있을 거라고...’ 말이죠. 그렇게 말해준다면, 정말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일도 하지 않고, 아이들이 원하는 천국 같은 세상에서 아이들과 함께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해답이 없는 삶 속에서 아이들을 책임져야하고, 내가 없어도 내 아이들이 사회에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끔찍한 목표를 주었기에, 늘 최악의 생각만 머릿속에 떠오르나 봅니다. 그렇게 윤건이를 키우는 일은 저에게도 윤건이에게도 위험천만한 시간들의 연속으로 지나갔습니다.
사실, 저에겐 윤건이 만큼이나 소중한 딸이 있습니다. 윤건이의 동생이죠. 동생 또한 남들과는 다르고, 느리게 커가네요. 그렇기에 저는 더 일을 손에서 놓지 못했습니다. 두 아이를 위한 치료비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죠. 두 명의 아이가 더 좋아지길 바라는 희망은 치료를 중단할 수 없는 이유가 되었고 아이들을 위한다는 이유로 치료를 점점 더 늘려나갔죠.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도 모두 저와 같은 간절함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절대불변의 법칙처럼 아이들을 위한 치료가 부모의 삶을 낭떠러지에 몰아넣게 만드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절을 겪었기에 지금의 저는 단단해 졌나봅니다. 치료 하나를 더 늘리기보다는 아이와 함께 하는 추억을 늘리며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길 걸 보면 말입니다.
그렇게 특별한 일상의 시간은 흐르고, 윤건이는 자폐성 장애진단을 받고 특수반이 있는 유치원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제일 기쁜 건 친구들과 함께 견학을 갈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고 윤건이에게 미안했던 짐이 살짝 덜어진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감사한 나날들을 보내던 어느 날, 윤건이의 유치원 등원 길! 윤건이와 나를 쳐다보는 따가운 시선, 나를 향해 치켜든 검지와 함께 “저 엄마가 자폐아이 엄마야”라는 소리가 내 귀에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모여든 엄마들은 윤건이와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듯 했습니다. 윤건이의 이름도 모른 채 ‘자폐아이’라는 특별한 이름으로요. 맞아요. 윤건이는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이니 자폐아이고, 저는 자폐아이의 엄마가 맞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피가 거꾸로 쏟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손도 파르르 떨리고... 저는 이내 아무것도 못들은 척 고개를 푹 숙인 채, 아이를 등원시키고 출근길에 나섰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왜 이리 눈물이 나는 걸까요? 그 말을 듣고도 못들은 척 자존심을 내세운 제가 정말 바보 같았습니다. 윤건이가 없었다면 분명, 그 엄마들을 찾아가 소리쳤을 겁니다. 아니 싸웠겠죠. 그런데 윤건이 엄마라 그럴 수 없었습니다. 제가 소리치면 윤건이가 어렵게 입학한 유치원에서 쫓겨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죠. 다시금 괜찮다고 여기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하루 종일 귀에 맴도는 말 ‘자폐아이.....’ 윤건이가 유치원에서도 ‘자폐아이’라고 불리고 있을까? 장애인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을 하니 마음이 미어지는 듯 했습니다. 늘 사회의 죄인처럼 내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눈치를 보며 살아왔죠. 하지만 ‘이윤건’이라는 이름대신 ‘자폐아이’라고 불리는 내 아이. 또 ‘김주리’라는 이름 대신에 ‘자폐 아이엄마’ 라고 불리는 내 자신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더 당당해지기로 했습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윤건이 대신 내가 알려줘야겠다고 느꼈습니다.
다음날, 유치원 등원 길! 어김없이 만난 엄마들 무리에 터벅터벅 걸어갔습니다. 평소 말없이 아이만 챙기기 바쁜 제가 다가오자 엄마들도 놀란 눈치였습니다. 저는 활짝 웃으며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윤건 엄마예요” 라고요. 그러자 얼음이 된 듯 멈춰있는 엄마들... 얼굴에 한가득 가식이 섞인 미소를 머금고 “oo반 oo가 우리 윤건이를 너무 잘 챙겨줘서 너무 예쁘고, 고맙더라구요”라고 저는 한명씩 그 엄마들의 아이들을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엄마들 얼굴에도 미소가 보였습니다. 칭찬을 받은 엄마는 윤건이가 귀엽다고 윤건이 칭찬도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엄마들과 인사를 나누고 다음번에 차 한잔할 약속을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 이후로 내 아이의 이름은 ‘윤건이’가 되었습니다. 등원 길에 만난 엄마들도 “윤건아”라고 부르며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고, 그런 엄마들을 보며 친구들도 “윤건아 안녕”이라고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해줍니다. 세상인심은 아직 우리 윤건이가 사회에서 살아갈 희망을 주나 봅니다. “사랑하는 윤건아! 우리 윤건이가 말을 못하면 엄마가 너의 목소리가 되어 너의 이야기를 사회에 알려줄게!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윤건이를 이해할 수 있게 엄마가 노력할게! 힘내자~ 파이팅!”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자폐아이의 엄마도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가 지치지 않도록, 아이를 위해 사회에 아이들의 목소리를 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치료실을 전전하는 장애아이가 아닌, 사회에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아이를 만들기 위해서요. 우리 윤건이는 남들보다 조금 특별한 아이입니다. 다른 아이들이 걸어갈 때 미친 듯이 뛰어가는 아이, 다른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 공부할 때 퍼즐만 하는 아이, 다른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 때 나무 위에 매달려 있는 아이입니다.
이 특별한 아이가 보는 세상이, 이 아이가 느끼는 즐거움이 너희와 달라 그런 것이라고 알려주고 싶습니다. 놀이터에서 노는 것보단 나무 위에 오를 때가 더 재미있다는 걸 이해해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아이가 나무에 올라가 있는 것이 누군가의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가 아닌, 이 아이의 자극을 추구하는 재미있는 놀이라는 걸요.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아이는 자신의 전정감각 자극이 충분히 충족되면 엄마가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내려옵니다. 엄마는 그걸 알기에 기다려 줍니다. 사랑하는 내 아이에게 남들과 다른 시선의 따가움이 아닌, 세상은 아직 살만한 가치가 있고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이런 특별한 아이와 특별한 엄마를 다른 시선으로 쳐다보지 말아주세요. 함께 살아가고 싶습니다. 자폐아이가 아닌 ‘이윤건’이라는 이름의 친구로, 가족으로요.
[장려상] 특별한 아이와 특별한 엄마
김주리
저에겐 세상 누구보다 특별한 아들이 있습니다. 건강한 체격, 잘생긴 이목구비, 멋진 아들이죠. 사람들은 저에게 “아들 잘 생겼네.. 아들 잘 낳았네.” 라고 말합니다. 이 아이가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를 쓰면서 빛의 속도로 뛰어다니는 걸 보기 전에는요.
저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아홉 살이 되도록 말을 하지 못해, 엄마에게 “엄마”라고 부르지도 못하고요. 높은 곳에 올라가도 위험한 줄 모르고 행복해하는 특별한 아이입니다. 이런 특별한 아이와 함께한 9년이라는 시간과 함께 저도 특별한 엄마가 되었네요.
아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어릴 적부터 다니던 작은 영아전담어린이집을 퇴소하고 새로운 어린이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퇴소한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힘들다는 말을 늘 들어왔던 터라, 새로운 어린이집에 가게 되는 것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어린이집 생활은 시작되었죠.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어린이집에 간 첫 날, “어머님 안 되겠어요. 윤건이가 너무 힘드네요. 일찍 귀가 해주세요.” 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혹시나 잘 지내줄까? 하는 엄마의 설렘과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죠. 속상한 마음도 잠시, 일도 마치지 못한 채 저는 아이를 제 직장으로 데리고 와 일을 했습니다. 그래도 쫓겨나지 않고 다닐 수 있는 어린이집이 있음에 감사하며 말이죠.
그렇게 어린이집 생활을 시작한 지 일주일.
이번에는 어린이집 원장님께서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님! 윤건이에 대해 상담을 하셔야겠어요.” 무슨 일일까? 더 이상 우리 윤건이를 볼 수 없다고, 어린이집에서 퇴소하라고 하려고 하는 걸까? 아니면 더 일찍 집에 데려가라고 하는 걸까? 머릿속에 온갖 상상을 하며 퇴근 후 상담을 하러 갔습니다.
긴장된 마음을 안고, 들은 원장님의 첫마디. “어머님, 집에서 아이랑 놀아주나요? 일을 그만두고 아이랑 놀아주셔야죠.” 라고 조심스럽게 말하시네요.
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죄송합니다. 제가 노력해야죠.” 라고 수도 없이 반복하며 말을 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잘 놀아주지 못하는 엄마로 생각하시는 원장님께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겠더라고요. 또 이유 불문하고 죄송하다는 사과를 하지 않으면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쫓겨 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죠. 저는 그렇게 다른 부모들은 느끼지 않아도 될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하는 특별한 엄마가 된 거죠. 사회의 시선은 늘 그렇더라고요. 발달장애가 있는 아이는 엄마가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엄마가 아이와 잘 놀아주지 않아서 발달이 느린 거라고요.
우리 윤건이는 세 살 때부터 아홉 살인 지금까지 세 살에 멈춰있습니다. 세 살짜리 아이 키우듯 9년이라는 시간을 한결 같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노력이 무색할 만큼 내 아들은 시간이 지나도 늘 한결 같이 세 살짜리 큰 아들로 멈춰있네요.
이런 장애 부모의 마음을 사람들은 알기나 할까요?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살아왔지만 죄인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처럼이나 시간은 더디게만 흐르고,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오지 않는 것에 안심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OO어린이집’ 이라는 저장된 이름과 함께 벨소리가 울립니다.
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 전화였죠. 선생님께서 “어머님 내일 견학이 있는데, 윤건이는 견학에 데려가지 못할 것 같아요. 양해 부탁드려요.” 라고 말합니다. 아이를 전담해서 봐줄 사람이 없어서죠. 언제 어디로 사라질지 모르는 이 아이를 데려갈 수 없다는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하기에, 그 이후로도 견학이 있는 날이면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견학 날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는 아이는 식당을 하시는 친정 부모님께 맡겨야 했죠. 식당이 바쁜 날이면 아이는 식당 한 켠 방에서 만화영화를 보며 하루를 보냈다고 합니다. 아이에게 정말 미안했지만, 그래도 돌봐주실 부모님이 계신 것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렇게 어김없이 또 돌아오는 견학 날!
아이를 맡기고 출근길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휴대전화에 저장되지 않은 번호가 계속해서 전화가 옵니다. 영문도 모른 채 받은 전화기 너머로 “여보세요. 아이가 찻길을 맨발로 뛰어다니네요. 아이의 목에 걸려있는 미아방지 목걸이에 전화번호가 있어서 전화했어요! 너무 위험한데 아이가 가만히 있지 않네요. 빨리 와주세요”라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합니다.
저는 심장이 두근두근 터질 것 같고, 흥분된 마음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발을 동동 구르다 바닥에 주저앉아 울부짖으며 엄마께 전화를 했습니다. “윤건이 어디 갔냐고!!” 라고 소리쳐 묻자, 왜 우냐며... 윤건이는 방에 있다고 합니다. 아직 윤건이가 없어진 것도 모르고 계신 거죠. 엄마가 방에 가보니, 윤건이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바쁜 틈을 타 창문을 열고 맨발로 뛰어나간 겁니다. “윤건이 빨리 찾아와!! 찾아오라고!!”라고 엄마께 소리를 질렸습니다. 어디 다치지는 않았나, 사고는 나지 않았을까? 찾으러 가기 전까지 가만히 있지 못하고 도망가는 건 아닌가, 또 잃어버리면 어떡하지? 숨이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제발...제발...’ 이라고 수도 없이 기도했습니다. 1분이 한 시간 같았습니다. 그때 전화가 왔습니다. 다행히 윤건이는 무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 드는 악몽 같은 상상들이 저를 정말 미치게 만드는 듯 했습니다. 윤건이를 또 잃어버리거나 못 찾으면 나는 죽을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하며 말입니다.
‘장애아이의 부모’라는 삶이 힘들 때면 이렇게 살아 뭐하나, 윤건이랑 같이 사라질까? 이런 생각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어느 순간 윤건이 보다 하루를 더 살고 싶다는 소원이 생겼고, 그런 생각이 이 짧은 순간도 저에게 악몽을 상상을 하게 했나봅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해답을 줬으면 좋겠습니다.
‘김주리! 너는 윤건이, 윤아보다 더 오래살수 있을 거라고...’ 말이죠. 그렇게 말해준다면, 정말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일도 하지 않고, 아이들이 원하는 천국 같은 세상에서 아이들과 함께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해답이 없는 삶 속에서 아이들을 책임져야하고, 내가 없어도 내 아이들이 사회에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끔찍한 목표를 주었기에, 늘 최악의 생각만 머릿속에 떠오르나 봅니다. 그렇게 윤건이를 키우는 일은 저에게도 윤건이에게도 위험천만한 시간들의 연속으로 지나갔습니다.
사실, 저에겐 윤건이 만큼이나 소중한 딸이 있습니다. 윤건이의 동생이죠. 동생 또한 남들과는 다르고, 느리게 커가네요. 그렇기에 저는 더 일을 손에서 놓지 못했습니다. 두 아이를 위한 치료비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죠. 두 명의 아이가 더 좋아지길 바라는 희망은 치료를 중단할 수 없는 이유가 되었고 아이들을 위한다는 이유로 치료를 점점 더 늘려나갔죠.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도 모두 저와 같은 간절함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절대불변의 법칙처럼 아이들을 위한 치료가 부모의 삶을 낭떠러지에 몰아넣게 만드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절을 겪었기에 지금의 저는 단단해 졌나봅니다. 치료 하나를 더 늘리기보다는 아이와 함께 하는 추억을 늘리며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길 걸 보면 말입니다.
그렇게 특별한 일상의 시간은 흐르고, 윤건이는 자폐성 장애진단을 받고 특수반이 있는 유치원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제일 기쁜 건 친구들과 함께 견학을 갈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고 윤건이에게 미안했던 짐이 살짝 덜어진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감사한 나날들을 보내던 어느 날, 윤건이의 유치원 등원 길! 윤건이와 나를 쳐다보는 따가운 시선, 나를 향해 치켜든 검지와 함께 “저 엄마가 자폐아이 엄마야”라는 소리가 내 귀에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모여든 엄마들은 윤건이와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듯 했습니다. 윤건이의 이름도 모른 채 ‘자폐아이’라는 특별한 이름으로요. 맞아요. 윤건이는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이니 자폐아이고, 저는 자폐아이의 엄마가 맞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피가 거꾸로 쏟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손도 파르르 떨리고... 저는 이내 아무것도 못들은 척 고개를 푹 숙인 채, 아이를 등원시키고 출근길에 나섰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왜 이리 눈물이 나는 걸까요? 그 말을 듣고도 못들은 척 자존심을 내세운 제가 정말 바보 같았습니다. 윤건이가 없었다면 분명, 그 엄마들을 찾아가 소리쳤을 겁니다. 아니 싸웠겠죠. 그런데 윤건이 엄마라 그럴 수 없었습니다. 제가 소리치면 윤건이가 어렵게 입학한 유치원에서 쫓겨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었죠. 다시금 괜찮다고 여기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하루 종일 귀에 맴도는 말 ‘자폐아이.....’ 윤건이가 유치원에서도 ‘자폐아이’라고 불리고 있을까? 장애인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을 하니 마음이 미어지는 듯 했습니다. 늘 사회의 죄인처럼 내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눈치를 보며 살아왔죠. 하지만 ‘이윤건’이라는 이름대신 ‘자폐아이’라고 불리는 내 아이. 또 ‘김주리’라는 이름 대신에 ‘자폐 아이엄마’ 라고 불리는 내 자신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더 당당해지기로 했습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윤건이 대신 내가 알려줘야겠다고 느꼈습니다.
다음날, 유치원 등원 길! 어김없이 만난 엄마들 무리에 터벅터벅 걸어갔습니다. 평소 말없이 아이만 챙기기 바쁜 제가 다가오자 엄마들도 놀란 눈치였습니다. 저는 활짝 웃으며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윤건 엄마예요” 라고요. 그러자 얼음이 된 듯 멈춰있는 엄마들... 얼굴에 한가득 가식이 섞인 미소를 머금고 “oo반 oo가 우리 윤건이를 너무 잘 챙겨줘서 너무 예쁘고, 고맙더라구요”라고 저는 한명씩 그 엄마들의 아이들을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엄마들 얼굴에도 미소가 보였습니다. 칭찬을 받은 엄마는 윤건이가 귀엽다고 윤건이 칭찬도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엄마들과 인사를 나누고 다음번에 차 한잔할 약속을 하고 헤어졌습니다. 그 이후로 내 아이의 이름은 ‘윤건이’가 되었습니다. 등원 길에 만난 엄마들도 “윤건아”라고 부르며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고, 그런 엄마들을 보며 친구들도 “윤건아 안녕”이라고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해줍니다. 세상인심은 아직 우리 윤건이가 사회에서 살아갈 희망을 주나 봅니다. “사랑하는 윤건아! 우리 윤건이가 말을 못하면 엄마가 너의 목소리가 되어 너의 이야기를 사회에 알려줄게!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윤건이를 이해할 수 있게 엄마가 노력할게! 힘내자~ 파이팅!”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자폐아이의 엄마도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가 지치지 않도록, 아이를 위해 사회에 아이들의 목소리를 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치료실을 전전하는 장애아이가 아닌, 사회에 다가갈 수 있는 그런 아이를 만들기 위해서요. 우리 윤건이는 남들보다 조금 특별한 아이입니다. 다른 아이들이 걸어갈 때 미친 듯이 뛰어가는 아이, 다른 아이들이 책상에 앉아 공부할 때 퍼즐만 하는 아이, 다른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 때 나무 위에 매달려 있는 아이입니다.
이 특별한 아이가 보는 세상이, 이 아이가 느끼는 즐거움이 너희와 달라 그런 것이라고 알려주고 싶습니다. 놀이터에서 노는 것보단 나무 위에 오를 때가 더 재미있다는 걸 이해해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아이가 나무에 올라가 있는 것이 누군가의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가 아닌, 이 아이의 자극을 추구하는 재미있는 놀이라는 걸요.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아이는 자신의 전정감각 자극이 충분히 충족되면 엄마가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내려옵니다. 엄마는 그걸 알기에 기다려 줍니다. 사랑하는 내 아이에게 남들과 다른 시선의 따가움이 아닌, 세상은 아직 살만한 가치가 있고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이런 특별한 아이와 특별한 엄마를 다른 시선으로 쳐다보지 말아주세요. 함께 살아가고 싶습니다. 자폐아이가 아닌 ‘이윤건’이라는 이름의 친구로, 가족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