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장애수기공모전 [최우수상_금주는 도전의 아이콘~!]

2021-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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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 금주는 도전의 아이콘~!


이 금 주



  나는 1980년도에 남제주군 대정읍에서 1남 2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태어난 시기부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나는 어릴 적엔 지금보다 장애가 심했었다. 지금 엄마를 통해 예전 얘기를 듣자면 그때는 잘 걷지 못해서 벽 짚고 걷는 연습을 많이 했다고 한다.
  셋 아이의 엄마로서 애들을 키우고 가정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살아온 엄마에게 퇴근해 오면 늘 손잡고 걷는 연습을 하자고 보채도 엄마는 늘 나와 함께 해 주었다.
 
  모슬포 오일장날 하얀 고무신을 사주면 얼마 못 가 고무신 앞이 다 닳아져서 그 다음 장날 사야 했던 고무신. 늘 걷는 연습을 하며 넘어지고 피나고 멍든 나의 무릎을 보며 늘 눈물로 세월을 보내야 했던 우리 엄마. 이제 와서 어느덧 성인이 된 내가 어떻게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며, 시퍼렇게 멍들었을 우리 엄마의 마음을 만져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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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어릴 적, 언니와~                                                  ▲ 작년 휴애리에서 엄마와~


  8살이 되고 학교 입학 할 당시 대정 초등학교에 입학하려고 갔었으나, 그 때는 혼자서 스스로 할 수 없고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모든 활동이 가능했기에 입학을 거부했고 그 후 2년이 지난 1990년도에 제주영지학교에서 입학 통지서가 와 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그 학교는 다양한 유형의 장애학생들이 있었으며 집이 먼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도 있었다. 6년이라는 시간동안 기숙사 생활을 하며 가족과 떨어져서 살아야 했던 나에게 인생의 첫 위기였다.
  10살이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아야 했기에 1학년 때는 늘 눈물로 보낸 시간이었다. 토요일 날 엄마가 데리러 오고 월요일 날엔 다시 학교에 가야 했던 나는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몸부림치며 울고, 선생님들이 설득해도 학교 가기 싫었는데 성인이 된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때 힘들었을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어느 덧 기숙사 학교생활에 적응하며 5학년 때부터는 혼자서 집에서 통학도 하고 6년이라는 시간동안 기숙사 생활하며 친구들, 보모 선생님, 사감 선생님과 동고동락 하며 지내온 나에게 초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다가온 담임선생님의 권유는 중학교를 일반학교로 가라는 것이었다.
  나에게 일반학교로 간다는 건 한편으로는 설렘과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이 공존해 있었지만 겪어보지 않은 일이기에 어떤 삶이 펼쳐질지 담임선생님의 권유와 부모님과의 상담을 거쳐 과감히 일반중학교로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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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졸업식

 

  중학교 1학년으로 입학한 나는 처음에 반 편성을 위한 시험을 보고 반이 편성되어 학교생활이 시작되었는데 특수학교에서의 삶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특수학교에서는 기숙사생활까지 같이 했으니 자연스레 학교에 가서도 여러 친구들과 어울리며 친하게 지내었는데 일반학교에 오니 그 때 함께 한 친구들은 한 명도 없고 새로 사귀어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먼저 다가서고 함께 해야 친구가 된다는 그 현실 앞에 마주하게 되었다, 악~! 악~! 이거 어떻게 하지? 어떻게 다가서고 적응하며 학교 수업에 임해야 할지 앞이 너무 캄캄했다. 나는 일반학교로 보내신 담임선생님과 부모님이 원망스럽기 시작했다.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3~4시까지 학교에 있으면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점심 도시락 먹고 쉬는 시간 혼자서 보내야 했던 나는 등ㆍ하교 할 때마다 내 눈에서 나오는 눈물은 그칠 줄 몰랐다. 담임선생님과의 상담도 여러 번, 정말 견디기 힘든 건 체육시간으로 반 친구들과 같이 운동장을 뛰었는데 사이가 벌어지는 순간, 폭포수 같이 흘러 터진 눈물은 감출수가 없었다. 반 수업 중에도 빈번히 발생하는 발표하기 수업은 나에게 있어서는 긴장함과 피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늘 피하고 싶고 눈물로 시간들을 보낼 수 없기에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학교생활에 적응하며 순간순간 어려움이 있었지만, 잘 견디고 극복하여 고등학교, 대학교를 진학하며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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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생인 나                                                                      ▲ 중학교 졸업식날 소중한 친구와~♡


  중학교 이어 고등학교 3학년 까지 진행되어진 나의 삶은 학교 스케줄 속에서 치열한 학업 경쟁의 삶에 적응을 해야 했고 돈독한 교우관계 형성을 위한 부단한 노력과 적응하기에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가난에 찌들어진 가정을 지키고 일으켜 세우시려는 우리 부모님과의 삶과 맞물리는 것 같았다. 힘든 부모님의 삶과 비교해서는 안 되겠지만.
  어릴 적 열병으로 골수염을 앓으신 아버지는 정작 본인의 몸이 불편하시지만 단 하루도 빠짐없이 일을 하고 가정을 지키며 자녀들에게 성실함과 경제력을 알게 해주셨고 자녀 또한 장애가 있음을 보고 살아온 아버지의 심정은 무엇과 비교할 수 있으랴.
  시시때때로 아버지는 자신의 본을 보여주지 못할 때마다 철없이 굴었던 딸의 모습에 굴하지 않으시고 항상 그 자리를 지켜주신 아버지의 모습에 고개가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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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졸업식 날 아버지 가게 앞에서.


  고3 시절 대입을 앞두고 성적이 생각만큼 나오지 않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하면 좋은 것 같은 것들이 뭐가 있을까? 한참 고민할 시기가 왔다.
  이 책 저 책 보며 이 고민 저 고민 하다가 “사회복지”라는 소개의 글을 보게 되었다. 이 사회에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장애인, 노인, 청소년, 아동 그리고 삶의 문제와 그로 인해 처해진 환경 속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문제점들.
  이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하면 사회의 보탬이 될 수 있는 것이 뭘까? 고민하며 공부하여 사회복지학과에 진학을 하게 되었다.

  대학에 가니 중, 고등학생 시절과는 완전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동갑내기 친구도 있고 나이 어린 친구들도 있고 나이 드신 분들도 계셔서 대학생활은 편하게 할 수 있었다. 그토록 힘들었던 중 – 고 시절의 힘듦과 어려움이 발판이 되었는지 친구들도 많이 사귀게 되었고 동아리 활동도 하면서 봉사부장의 직책도 맡아 인근 복지관에 가서 친구들과 함께 봉사활동도 하고 함께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곤 했었다. 중ㆍ고등학생 시절 누리지 못했던 인간관계를 맺고 누릴 수 있어서 대학시절은 나에게 있어서 제일 황금기 같은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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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활 중 짝꿍과 함께                                         ▲ 자원봉사 입교식~ 맨 위 주황색~!


  대학 졸업 후 나는 장애인 분야에서 직업을 갖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에 필요한 자격증도 따고 관련된 컴퓨터도 배워서 자격증을 따고 나름대로 준비를 하여 사회생활에 뛰어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사회에 만연되어 자리 잡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들이 또 나의 앞길을 막았다. 전혀 생각지 못한 이 일 앞에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
  순간, 어떻게 하지? 나도 직장에 취업을 하여 돈을 벌고 자아 성취감을 맛보며 노력하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살고 싶은데.

  그러나 이대로 주저앉고 싶지는 않았다. 끊임없이 사회에 도전을 했다. 도전할 때마다 맛봐야 했던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으로 취업을 거부당했던 것은 너무 당연했고 자주 겪어야 했다. 하물며 “사회복지” 라는 명패를 달고 있는 기관들 앞에서도. 이러한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취업이 될 때까지 계속 취업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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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졸업식 날                                                                ▲ 대학졸업식 날 언니와 오빠랑 함께


  그러던 중 2004년 6월에 서귀포시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일자리 창출이 있다는 광고문을 보게 되고 복지관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맡아진 업무는 학령기 아동 특수교육 보조로 업무기간은 단 9개월. 근무하는 기간이 짧아서 너무 아쉬웠지만 그래도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다.
   복지관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알게 되고 관계를 맺어 사는 삶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업무도 배우고 계획서 짜서 실행하는 것도 알게 되었고 내가 하는 일을 통해 상대방이 하나라도 뭔가 얻고 가는 것을 보며 보람도 느끼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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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자리창출로 복지관에서 근무하며~             ▲ 학령기아동과 현장학습


  9개월 계약이 끝나고 아쉬움을 뒤로 하고 여러 번 사회에 문을 두드렸다. 이젠 정말 내가 발전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요양원 사회복지사로 들어가기로 희망하며 이력서를 들고 찾아갔는데 커피 잔을 건네받고 손이 불편하다는 것을 보신 원장님께서 이 일을 할 수 있냐고 되물었다. 할 수 있다고 당당히 말을 했으나 결과는 불 보듯 뻔하게 취업이 되지 않았다.
  그 후 컴퓨터 앞을 거의 떠나지 않고 직장을 알아보았다. 거의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jdc, 마사회에 행정인턴으로 일을 했고 학교는 컴퓨터 방과 후 강사로 근무를 했으며 또 다시 기회가 온 복지관에선 사회복지사로 나를 발전시켜 나갔고 그에 따라 필요한 라이센스를 준비하며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했다. 계약직으로 6개월, 1년, 2년 등으로 다니면서 늘 계약이 끝나면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하는 마음의 스트레스는 늘 갖고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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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jdc에서 근무 중                           ▲2010년 kra에서 근무 중                           ▲2011년 학교에서 컴퓨터강의


  서귀포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행정인턴으로 2년 동안 오가며 학생들과 인사하고 교무실에선 교과목 선생님들과 함께 소통하며 DID(광고용 tv)시스템 일을 하면서 업무에 대한 보람과 많이 겪어야 했던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느낄 새 없이 즐겁게 업무에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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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2014년 고등학교에서 행정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수없는 계약직으로서의 직장생활과 구직활동으로 나의 밑바탕이 탄탄해 졌는지 학교 행정인턴이 끝난 후 다시 구직활동을 하게 되었을 때는 약간의 마음의 여유를 갖고 구직활동에 임하게 되었다. 인터넷으로 구직활동에 이력서를 등재해 놓고 여유를 갖고 직장을 알아보았다.
  2014년 7월 어느 날 노인복지기관에서 면접권유 연락이 왔다. 2004년 대학 졸업 후 처음 겪어보는 구직활동의 설렘이었다. 센터장님이 이력서를 보고 충분히 재가복지 업무를 할 수 있을거란 판단에 연락을 드렸다고 했다. 감사했다. 내가 이곳에서 맡은 업무는 행정업무와 회계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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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7월~ 00복지센터에서 근무중인 OO, 나는 사회복지사다~!


  처음 맡아보는 업무이기에 수없이 센터장님께 물어보고 다른 센터에 가서 어떻게 처리하는지도 배우고 그러면서 그 기관의 사회복지사, 국장님도 알게 되었다. 업무도 배우고 사람도 알게 되니 1석2조, 2배의 행복함과 성취감을 경험하며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2016년도에 센터의 생각지 못한 변화의 바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센터장님이 교체되는 문제와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내 신체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선천적으로 뇌성마비가 있는 나에게 언어에 문제가 생겼다. 나는 말을 하기가 힘들고 말을 할 때마다 턱 근육이 아파오고 식은땀이 나고 상대방은 나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에 문제가 생기는 일에 봉착하게 된다.
  새로 교체된 센터장님은 늘 불러내어 이 업무, 저 업무에 대해서 물어보고 자기의 생각을 주장하면서 내가 말을 하면 알아들을 수 없다고 하고 옆 직원에게 나에 대해서 ‘금주 선생 이제까지 일을 하면서 큰 문제내지 않고 일 잘하냐’ 고 묻는 등의 말들이 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충격적이고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상처 되는 말들이 여러 번 내 귀에 들어올수록 내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센터에 경제적인 문제가 생기면서 원하지 않은 사직을 하게 되었다.
  10년 만에 정규직으로 취업하여 보람과 자아성취감 느끼며 지내 왔었는데 또 사직을 하게 된 나는 부모님 모르게 눈물만 펑펑 쏟아내야 했다.
  사직 후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일에 전력을 다했다. 마음 편히 쉬면 언어가 나아질 줄 알았는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고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눈물로 시간을 보냈고 기존에 장애가 있던 나에게 찾아온 이 언어의 불편함은 뭐라 말로 표현할지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2개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또 취업을 하여 기존에 했던 업무를 하게 되었지만 언어의 불편함을 가진 채로 글로 쓰면서 혹은 문자로 사람들과 소통하며 일을 하면서 병원치료를 병행하였다.
  업무를 하면서 제주시 병원에 언어치료 다닐 수 있도록 센터장님이 배려해 주신 덕분에 주1회 언어치료를 병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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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아~ 그만 좀 나와~~멈춰 줘~~!                      ▲ 언어치료 중인 금주


  주1회 언어치료 시간 30분은 나에게 있어서 턱없이 부족하면서도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그 시간외에 따로 혼자서 집에서 연습을 해야 했다. 35살 적지 않은 나이에 한참 사회생활 할 나이에 짐을 하나 더 얹어 지내야 했던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너무 힘들었다. 엄마 모르게 버스로 오가며 흘린 눈물은 나의 마음에 멍울을 짓게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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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근 후 연습                                                                    ▲ 출근 전에 언어연습에 몰입중인금주


  이렇게 지내기를 4년. 언어가 조금씩 나아질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고 언어치료, 훈련을 하면 말을 하는데 불편함이 없다라는 것을 깨우치기 시작한 2020년. 치료사로부터 혼자 연습해도 좋겠다라는 소견을 듣게 되고 그 이후로 계속 일과 언어연습에 매진하게 되었다.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언어연습에 몰입을 하던 중에도 아침, 저녁에만 연습을 해도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또 직장을 알아보는데 또 취업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래서 몸을 위하여 마음의 여유를 갖고 YMCA에서 실행하는 직업훈련교육에 참여하여 전산회계 2급 자격증을 따게 되었다. 이 자격증을 따고 언어연습에 전념하며 구직활동을 하는데 아직 언어가 완전히 기존의 언어상태로 회복되지 않아서 편히 근무할 수 있는 직장을 알아보던 가운데 장애인일자리를 알게 되어 신청을 하고 일을 하게 되었다. 이 일을 하면서 시간적 여유가 많아짐에 따라 또 구직활동을 하며 모 초등학교 특수교육 자원봉사를 하고 남는 시간동안 언어연습에 전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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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새로운 삶을 꿈꾸며 투 잡 인생 start~!


  2021년. 지금의 나는 40살이 되었다. 도전 할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은 나이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한없이 보잘 것 없지만 나의 위치와 상황에 맞게 사회에 맞서며 도전하고 싶다.
  이제 남은 나의 도전은 또 정규직으로서의 취업과 결혼이 남아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말을 한다. 편하게 나라에서 주는 돈 받아먹고 살라고. 그러나 난 그러고 싶지 않다. 열심히 활동할 수 있을 때 사회생활하며 당당히 자아실현하며 살아가고 싶다.
  언젠가 나이가 들어 활동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 올 테니까.
  결혼. 나에게 있어서 최고의 난관이다. 어떻게 준비하며 대응해야 할지 많은 생각과 고민 속에 놓여 있지만 나에게 가장 합당하게 이루어 나가게 될 것을 믿는다.

 

  지금에 와서 나의 삶 중 20년 세월을 되돌아본다. 어려움과 도전의 연속이었던 나의 삶이 필름처럼 앞을 지나간다. 장애인의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만연되어 있는 이 사회에서 겪고 싶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과 인식으로 한 없이 초라해지는 나의 자아를 보게 되지만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누군가에게 삶의 힘이 되어주는 삶으로 자리매김 하며 사는 삶이 가장 이 세상에서의 멋진 삶일 것 같다.
 
  나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인생이지만 멈출 줄 모르고 도전하는 인생이기에.
  난, 도전의 아이콘이다!